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지배주주 중심 경영이 저조한 수익률 핵심 원인으로 작용…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한국 증시에서 투자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대외변수의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누적된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가 곪아 터졌다는 시각이 많다. 대기업의 지배주주 중심 경영이 주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12일 연세대학교 신촌 캠퍼스에서 만난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은 “한국 자본시장이 붕괴하고 있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그는 “반도체가 생각보다 안 좋긴 하지만, 올해는 전반적으로 한국 기업 이익이 회복되는 해”라면서 “턴어라운드하는 첫해에 주가가 빠지는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코스피 2,500선이 무너졌고,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는 ‘4만전자’를 향해 고꾸라지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그림자가 여느 때보다 짙어지고 있다.
이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쉽게 얘기해서 투자 수익률이 안 나는 것”이라며 “기업이 성장을 거의 못하고, 주식 수가 늘어나면서 주당 수익성이 악화가 되니까 주가가 못 오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은 주가 변화와 배당을 더해 연율화한 총주주수익률(TSR, Total Shareholder Return)이 5%에 불과하다고 그는 짚었다. OECD 바닥권이다. 최근 IT와 소프트웨어, AI 분야에서 독주하는 미국은 13%, 일본과 대만은 10~11%이다. 한국은 3% 수준인 중국 쪽에 더 가깝다.
정체된 기업 성장과 관련해 이 교수는 “총주주수익률 5% 중 주가 상승률이 3%, 배당 수익률이 2%”라며 “기업의 연간 이익이 3% 증가했다는 건데, 한국 명목성장률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물가상승률만큼의 이익밖에 내지 못한 셈이다.
주식 수 증가에 대해선 “HD현대그룹이나 LG화학처럼 회사를 쪼개서 상장하고, 형편없는 기업들 상장이 계속되고, 좋은 기업은 자사주를 들고 소각하지 않으니까 주식 수가 계속 늘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을 묻자 “지배주주 패밀리의 의식이 가장 큰 문제”라는 명료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 교수는 “지배주주가 주가를 억누르든 주가가 오르는 걸 좋아하지 않든, 주주 중심 경영을 외면하면서 일반 주주가 소외되는 양상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표출되는 것”이라며 “미국은 회사의 유일한 목적이 이익을 많이 내고 주가를 높게 유지하는 건데, 한국은 거의 모든 대기업이 지배주주 중심 경영을 하기 때문에 그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1990년대 20대 후반의 나이로 제이피모건 홍콩 아시아태평양본부 부사장을 거쳐, 30대 중반에 삼성증권 초대 리서치센터장을 지내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메릴린치 한국 공동대표 등을 맡은 국제투자 전문가다. 현재는 연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포럼 회장을 맡은 건 올해 초부터다. 2019년 12월 금융투자업계 인사들이 모여 설립한 포럼은 ‘기업 거버넌스를 개선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하자’는 비전을 목적으로 한다.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지배주주의 지배권 강화·유지 측면에서는 주가 상승이 불리한 상황도 있다는 건 이해가 된다. 다만 지배주주의 이해관계가 실제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는 다른 문제다. 저조한 총주주수익률에 지배주주 문제가 작용한다는 건가?
=작용한다. 회사보다는 지배주주 입장에서 투자 결정을 한다. 회사를 위해 좋은 투자 기회인데 지배주주 입장에서는 좋지 않으면 투자를 안 하는 경우도 많다. 외국이나 국내 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들 얘기를 들어보면, 당연히 해야 하는 딜인데 지배주주 입장에서 지배구조가 불리하다는 이유로 안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반대로 지배주주에게 유리하면 회사에 안 좋은 딜도 한다. 이런 결정들이 성장성을 떨어지게 하는 측면이 있다.
한국은 지배주주 지분율이 평균 20~30% 된다. 나머지 70~80%는 일반 주주다. 개인 투자가도 있고 연금도 있다. 이들이 원하는 방향은 같다. 장기적인 주가 상승과 기업 이익 증가다. 그런데 일반 주주를 비즈니스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고, 지배주주 중심 경영에 골몰한다.
대표적으로 신세계가 그렇다. 시가총액이 2조 원 밑으로 내려왔고 차입금이 10조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차입금이 시가총액의 6~7배다. 미국이면 이미 부실기업으로 분류가 되고, 이사회는 자산을 매각해서 차입금을 줄이는 과정으로 갔을 거다. 그래야 회사가 살고 주식 가치가 올라온다. 신세계는 전혀 그렇게 안 되지 않는가. 지배주주인 정용진 회장이 사내이사 등기도 안 하면서 의사결정을 하고, 기업 가치나 일반 주주 이익은 외면한 채 빚잔치만 벌이고 있다.
-정용진 회장은 왜 무리하게 차입금을 늘리는 건가?
=한국은 아직 창업주나 2세, 3세를 평가할 때 시가총액 기준으로 얼마의 기업 가치를 만들었는지 보지 않는다. 자산 규모 재계 순위로 평가한다. 빚이 많을수록 자산 규모가 커진다. 60년대식이다.
덩치가 크다는 게 반드시 이익 증가와 연동되는 건 아니다. LG그룹은 회사가 커지는데 실제 이익은 안 나고 있다.
LG그룹이 ‘인화(人和)’의 문화를 가졌다고 하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굉장히 안 좋은 기업이다. LG그룹엔 자사주를 소각한 기업이 한 곳도 없다. SK도 정말 밸류업을 하겠다고 하면, 첫 번째로 자사주를 25% 매입해서 소각하면 된다. 한국에서는 대기업이 자사주를 들고 있으면서 소각을 안 하는 현상이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재벌 총수 일가, 즉 지배주주 패밀리 경영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이라고 보는 건가?
=재벌 비즈니스 모델, 패밀리 경영이라는 건 전 세계적으로는 상당히 검증된 모델이다. 그 자체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포럼의 지향은 재벌 개혁과 결이 아주 다르다.
패밀리 경영은 특히 창업주와 2세에서 성과가 좋다. 하지만 3세부터 조금 성과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전 세계에서 목격된 현상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고려아연 다 3세다. 현대차 정의선 회장은 3세인데도 경영 능력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삼성의 이재용 회장이나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같은 경우는 경영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의사결정을 안 함으로써 기업을 망가뜨리고 있다. 최윤범 회장도 기업과 주주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다. 고려아연이 이번에 유상증자를 발표했을 때 포럼은 논평에서 ‘자해 행위’라는 표현으로 비판했다. 이런 경우에는 창업 패밀리가 경영하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한다. 한국이 안 해봤다고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일은 아니다. 시행착오도 겪겠지만, 잘못된 3세, 4세에 맡기는 것보다는 훨씬 바람직하다.
-대를 거듭할수록 그룹 내 후계자 교육 시스템이 고도화하면서 패밀리 경영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측면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기대가 현실에서는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스웨덴의 발렌베리는 검증이 된 후계자에게 경영을 맡기는 시스템이다. 장기간 다음 세대의 젊은 남녀에게 역할을 주고 지켜본다. 적합한 몇 명을 뽑아서 공동 경영을 하게 하고, 인성이나 경영 능력, 미래를 보는 눈을 검증한다.
한국은 검증 안 된 사람이 자동으로 승계를 받는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셋째 아들이었다. 첫째, 둘째를 뛰어넘고 셋째를 발탁한 건 이병철 회장의 통찰력이다. 장자 승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3남이 하면 그룹을 잘 키우겠다고 생각한 거다. 이재용 회장은 장남인데, 여러 형제 중에 베스트 선택이었지 모르겠다. 이건희 회장이 타계하고 이재용 회장이 경영을 맡은 지난 7년 정도를 보면, 항공모함이 가라앉고 있는 형국이다. 삼성전자 실적이나 주가를 보면 심각한 문제에 노출돼 있다. 경영 능력이 상당히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재계는 오너 일가 고유의 능력과 역할이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대를 이어 축적된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가 있다는 얘기를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삼성전자 전문경영인이 전권을 가지면, 외국 기업도 패밀리 멤버인 이재용 회장 못지않게 전문경영인을 동등하게 카운터 파트너로 대우한다. 삼성의 이름을 갖고 있으면, 외국 나가서 인사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다. 삼성을 대표하는 사람이 가는데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가 안 만나겠는가.
중요한 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다. 이재용 회장은 악수하고 다니는 홍보대사 같다. 네트워크를 통해 M&A를 한다고 했는데,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아무런 딜이 없었다. 고려할 만한 기업들의 가치는 그사이에 2~3배 올랐다. 삼성전자는 캐시가 좀 줄었다. 지금은 인수하기 힘들 거다. 기회를 놓친 거다. 이재용 회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오너 경영과 관련해, 과도한 겸직에 대한 비판도 목소리도 높다. 대표적으로 KG그룹 2세 곽정현 사장은 그룹 내 6개 계열사에서 등기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적절성을 평가하는 겸직 수의 기준이 있는가?
=그룹에서 가장 중요한 회사 한두 개 맡아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상근직이면 매일 회사에 가서 일상 업무를 봐야 한다. 과도한 겸직을 한다는 건 여기저기 타이틀을 걸어놓고 급여를 받겠다는 의도 아니겠나. 급여를 받지 않고 중요한 의사결정에만 관여한다면 용인 가능한 측면도 있다.
기본적으로는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좋다고 본다. 일론 머스크도 이것저것 벌리고 특히 정치에 끼어들면서, 주가는 지금 올라가고 있지만, 결국 테슬라 주주한테는 해로운 결과로 나타날 거다. 가령 깨어 있는 시간의 50%를 테슬라에 할당하는 것과 10%를 할당하는 건 최고경영자(CEO)가 의사결정하는 속도나 회사 전략을 수행하는 속도에 있어서 차이가 크다. 그런 면에서 과도한 겸직은 극히 건전하지 않다. 지양해야 한다.
“상속세 낮춘다고 갑자기 지배주주가 변하진 않을 것”
“상법 개정 꼭 필요…이사 독립성·전문성 제고 노력 병행해야”
-정부가 현행 20%의 대주주 할증평가 폐지를 추진 중이다. 승계 부담을 덜어줘,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주 이익 침해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대주주 할증평가 폐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상속세율을 낮춘다고 갑자기 지배주주 패밀리가 주주 중심 경영을 하고, 주가를 높이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아부을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높은 상속세라고 주장하는데, 세율 20% 낮춰준다고 절대로 안 변한다.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주주 중심으로 경영할 수 있게 법 제도가 바뀌어서 환경이 이루어진 후에 바터(barter 맞교환)를 하든지, 아니면 환경 조성을 선결하고 나서 상속증여세를 낮추는 쪽이 맞다고 본다.
-법 제도적 환경 조성의 핵심으로 이사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이 꼽힌다. 상법 개정만으로 지배주주 중심 경영의 문제가 일거에 해소되기는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상법 개정의 효과는 어디까지이고, 병행해야 할 조치로는 무엇이 있는가?
=SK(SK이노베이션-SK E&S 합병), 고려아연(자사주 공개매수와 유상증자), 두산(두산로보틱스-두산에너빌리티 합병), 한화(한화에너지의 ㈜한화 공개매수). 올해 여름 이후로 문제가 됐던 기업이다. 다 이사회의 문제다. 지배주주 본인이 챙기거나, 밑에 전문경영인들이 회장님한테 선물 드리려고 노력한다. 그걸 견제할 수 있는 게 이사회인데, 이사회가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실정이다.
회사에 대한 충실 의무만 규정하면, 이사는 회사가 주는 안건을 그냥 찬성하기만 하면 된다. 실제 법률적인 지식이 많은 유명 로펌 변호사 출신, 판사 출신의 이사회 멤버는 이사회에서 거의 얘기를 안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도 회사에 대한 충실 의무는 지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가 없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 고려아연 유상증자 안건 경우 이사 13명 중 이사회에 참석 안 한 2명과 반대한 장형진 영풍 고문 빼고 모두 찬성해서 통과됐다. 이사는 회사가 시키니까 찬성한다고 하겠지만, 주주 이익에는 완전히 반하는 결정이다. 미국 같으면 당연히 통과가 안 된다.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 의무가 판례로 정립돼 있고, OECD의 기업 거버넌스 원칙에도 규정돼 있다.
이사 충실 의무를 확대하는 상법 개정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상법 개정이 이루어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한국 대기업은 용산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교만하다. 최고의 로펌 변호사를 고용해서 이리저리 다 피할 수 있다. 상법 개정과 동시에 이사회 독립성과 주주의 권리를 이해하는 사외이사가 많이 양산돼야 한다. 지금은 너무 부족하다. 법 제도만 개선된다고 갑자기 사외이사들이 모든 안건을 주주 관점에서 살피지는 않을 것이다.
-이사회의 독립성뿐 아니라, 전문성과 관련해서도 지적이 제기된다.
=이사회 멤버는 경영진을 감시만 하는 게 아니다. 식견, 경험, 지식을 바탕으로 미래 전략을 코치하고, 리스크나 부족한 부분을 집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지난 몇 년 동안 행정관료와 법조계 출신을 사외이사로 선임하지 않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신 업계의 외국인 전임 CEO나 고위 중역을 뽑는다. 글로벌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 모범 사례)를 경험한 인사를 모셔 오는 거다. 주요 기업 3분의 1은 외국인 사외이사가 있다. 대만 TSMC는 등기이사 10명 중 6명이 외국인이다.
한국은 현대차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기업에 외국인 사외이사가 없다. 삼성전자는 100% 한국인이다. AI 분야 전문가를 모셔 왔으면 ‘왜 AI 전략이 없냐’, ‘애로 사항이 뭐냐’, ‘누구누구를 기용해라’ 같은 잔소리를 엄청 했을 거다. 삼성이면 경쟁사 현직 CEO를 제외하고는 웬만한 거물급은 다 영입할 수 있다. 현 경영진과 이사회 모두 그런 노력을 안 한 데 대한 책임이 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금투세 도입 우려가 과도한 건 아닌가?
=지금은 한국 주식시장은 5% 수익밖에 안 난다. 이 상황에서 세금을 부과하는 건 가라앉는 배를 물속에 밀어 넣는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금투세에 대한 우려를 이해한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투자 대상 자산에 대해 공평한 세율을 적용하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 한국 자본시장이 정상화돼서 미국까지는 못 가도 일본이나 대만처럼 연 10%의 수익률을 낼 수 있으면, 세금 좀 내도 된다. 금투세가 자본시장의 메인 변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펀더멘털과 별로 상관이 없는 요소다.
원문링크 : [ 민중의 소리 인터뷰 / 조한무 기자 ] 코리아 디스카운트, 검증 안 된 지배주주 패밀리가 문제 - 민중의 소리
한국 증시에서 투자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대외변수의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누적된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가 곪아 터졌다는 시각이 많다. 대기업의 지배주주 중심 경영이 주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12일 연세대학교 신촌 캠퍼스에서 만난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은 “한국 자본시장이 붕괴하고 있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그는 “반도체가 생각보다 안 좋긴 하지만, 올해는 전반적으로 한국 기업 이익이 회복되는 해”라면서 “턴어라운드하는 첫해에 주가가 빠지는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코스피 2,500선이 무너졌고,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는 ‘4만전자’를 향해 고꾸라지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그림자가 여느 때보다 짙어지고 있다.
이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쉽게 얘기해서 투자 수익률이 안 나는 것”이라며 “기업이 성장을 거의 못하고, 주식 수가 늘어나면서 주당 수익성이 악화가 되니까 주가가 못 오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은 주가 변화와 배당을 더해 연율화한 총주주수익률(TSR, Total Shareholder Return)이 5%에 불과하다고 그는 짚었다. OECD 바닥권이다. 최근 IT와 소프트웨어, AI 분야에서 독주하는 미국은 13%, 일본과 대만은 10~11%이다. 한국은 3% 수준인 중국 쪽에 더 가깝다.
정체된 기업 성장과 관련해 이 교수는 “총주주수익률 5% 중 주가 상승률이 3%, 배당 수익률이 2%”라며 “기업의 연간 이익이 3% 증가했다는 건데, 한국 명목성장률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물가상승률만큼의 이익밖에 내지 못한 셈이다.
주식 수 증가에 대해선 “HD현대그룹이나 LG화학처럼 회사를 쪼개서 상장하고, 형편없는 기업들 상장이 계속되고, 좋은 기업은 자사주를 들고 소각하지 않으니까 주식 수가 계속 늘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을 묻자 “지배주주 패밀리의 의식이 가장 큰 문제”라는 명료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 교수는 “지배주주가 주가를 억누르든 주가가 오르는 걸 좋아하지 않든, 주주 중심 경영을 외면하면서 일반 주주가 소외되는 양상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표출되는 것”이라며 “미국은 회사의 유일한 목적이 이익을 많이 내고 주가를 높게 유지하는 건데, 한국은 거의 모든 대기업이 지배주주 중심 경영을 하기 때문에 그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1990년대 20대 후반의 나이로 제이피모건 홍콩 아시아태평양본부 부사장을 거쳐, 30대 중반에 삼성증권 초대 리서치센터장을 지내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메릴린치 한국 공동대표 등을 맡은 국제투자 전문가다. 현재는 연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포럼 회장을 맡은 건 올해 초부터다. 2019년 12월 금융투자업계 인사들이 모여 설립한 포럼은 ‘기업 거버넌스를 개선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하자’는 비전을 목적으로 한다.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지배주주의 지배권 강화·유지 측면에서는 주가 상승이 불리한 상황도 있다는 건 이해가 된다. 다만 지배주주의 이해관계가 실제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는 다른 문제다. 저조한 총주주수익률에 지배주주 문제가 작용한다는 건가?
=작용한다. 회사보다는 지배주주 입장에서 투자 결정을 한다. 회사를 위해 좋은 투자 기회인데 지배주주 입장에서는 좋지 않으면 투자를 안 하는 경우도 많다. 외국이나 국내 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들 얘기를 들어보면, 당연히 해야 하는 딜인데 지배주주 입장에서 지배구조가 불리하다는 이유로 안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반대로 지배주주에게 유리하면 회사에 안 좋은 딜도 한다. 이런 결정들이 성장성을 떨어지게 하는 측면이 있다.
한국은 지배주주 지분율이 평균 20~30% 된다. 나머지 70~80%는 일반 주주다. 개인 투자가도 있고 연금도 있다. 이들이 원하는 방향은 같다. 장기적인 주가 상승과 기업 이익 증가다. 그런데 일반 주주를 비즈니스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고, 지배주주 중심 경영에 골몰한다.
대표적으로 신세계가 그렇다. 시가총액이 2조 원 밑으로 내려왔고 차입금이 10조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차입금이 시가총액의 6~7배다. 미국이면 이미 부실기업으로 분류가 되고, 이사회는 자산을 매각해서 차입금을 줄이는 과정으로 갔을 거다. 그래야 회사가 살고 주식 가치가 올라온다. 신세계는 전혀 그렇게 안 되지 않는가. 지배주주인 정용진 회장이 사내이사 등기도 안 하면서 의사결정을 하고, 기업 가치나 일반 주주 이익은 외면한 채 빚잔치만 벌이고 있다.
-정용진 회장은 왜 무리하게 차입금을 늘리는 건가?
=한국은 아직 창업주나 2세, 3세를 평가할 때 시가총액 기준으로 얼마의 기업 가치를 만들었는지 보지 않는다. 자산 규모 재계 순위로 평가한다. 빚이 많을수록 자산 규모가 커진다. 60년대식이다.
덩치가 크다는 게 반드시 이익 증가와 연동되는 건 아니다. LG그룹은 회사가 커지는데 실제 이익은 안 나고 있다.
LG그룹이 ‘인화(人和)’의 문화를 가졌다고 하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굉장히 안 좋은 기업이다. LG그룹엔 자사주를 소각한 기업이 한 곳도 없다. SK도 정말 밸류업을 하겠다고 하면, 첫 번째로 자사주를 25% 매입해서 소각하면 된다. 한국에서는 대기업이 자사주를 들고 있으면서 소각을 안 하는 현상이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재벌 총수 일가, 즉 지배주주 패밀리 경영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이라고 보는 건가?
=재벌 비즈니스 모델, 패밀리 경영이라는 건 전 세계적으로는 상당히 검증된 모델이다. 그 자체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포럼의 지향은 재벌 개혁과 결이 아주 다르다.
패밀리 경영은 특히 창업주와 2세에서 성과가 좋다. 하지만 3세부터 조금 성과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전 세계에서 목격된 현상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고려아연 다 3세다. 현대차 정의선 회장은 3세인데도 경영 능력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삼성의 이재용 회장이나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같은 경우는 경영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의사결정을 안 함으로써 기업을 망가뜨리고 있다. 최윤범 회장도 기업과 주주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다. 고려아연이 이번에 유상증자를 발표했을 때 포럼은 논평에서 ‘자해 행위’라는 표현으로 비판했다. 이런 경우에는 창업 패밀리가 경영하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한다. 한국이 안 해봤다고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일은 아니다. 시행착오도 겪겠지만, 잘못된 3세, 4세에 맡기는 것보다는 훨씬 바람직하다.
-대를 거듭할수록 그룹 내 후계자 교육 시스템이 고도화하면서 패밀리 경영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측면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기대가 현실에서는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스웨덴의 발렌베리는 검증이 된 후계자에게 경영을 맡기는 시스템이다. 장기간 다음 세대의 젊은 남녀에게 역할을 주고 지켜본다. 적합한 몇 명을 뽑아서 공동 경영을 하게 하고, 인성이나 경영 능력, 미래를 보는 눈을 검증한다.
한국은 검증 안 된 사람이 자동으로 승계를 받는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셋째 아들이었다. 첫째, 둘째를 뛰어넘고 셋째를 발탁한 건 이병철 회장의 통찰력이다. 장자 승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3남이 하면 그룹을 잘 키우겠다고 생각한 거다. 이재용 회장은 장남인데, 여러 형제 중에 베스트 선택이었지 모르겠다. 이건희 회장이 타계하고 이재용 회장이 경영을 맡은 지난 7년 정도를 보면, 항공모함이 가라앉고 있는 형국이다. 삼성전자 실적이나 주가를 보면 심각한 문제에 노출돼 있다. 경영 능력이 상당히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재계는 오너 일가 고유의 능력과 역할이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대를 이어 축적된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가 있다는 얘기를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삼성전자 전문경영인이 전권을 가지면, 외국 기업도 패밀리 멤버인 이재용 회장 못지않게 전문경영인을 동등하게 카운터 파트너로 대우한다. 삼성의 이름을 갖고 있으면, 외국 나가서 인사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다. 삼성을 대표하는 사람이 가는데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가 안 만나겠는가.
중요한 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다. 이재용 회장은 악수하고 다니는 홍보대사 같다. 네트워크를 통해 M&A를 한다고 했는데,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아무런 딜이 없었다. 고려할 만한 기업들의 가치는 그사이에 2~3배 올랐다. 삼성전자는 캐시가 좀 줄었다. 지금은 인수하기 힘들 거다. 기회를 놓친 거다. 이재용 회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오너 경영과 관련해, 과도한 겸직에 대한 비판도 목소리도 높다. 대표적으로 KG그룹 2세 곽정현 사장은 그룹 내 6개 계열사에서 등기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적절성을 평가하는 겸직 수의 기준이 있는가?
=그룹에서 가장 중요한 회사 한두 개 맡아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상근직이면 매일 회사에 가서 일상 업무를 봐야 한다. 과도한 겸직을 한다는 건 여기저기 타이틀을 걸어놓고 급여를 받겠다는 의도 아니겠나. 급여를 받지 않고 중요한 의사결정에만 관여한다면 용인 가능한 측면도 있다.
기본적으로는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좋다고 본다. 일론 머스크도 이것저것 벌리고 특히 정치에 끼어들면서, 주가는 지금 올라가고 있지만, 결국 테슬라 주주한테는 해로운 결과로 나타날 거다. 가령 깨어 있는 시간의 50%를 테슬라에 할당하는 것과 10%를 할당하는 건 최고경영자(CEO)가 의사결정하는 속도나 회사 전략을 수행하는 속도에 있어서 차이가 크다. 그런 면에서 과도한 겸직은 극히 건전하지 않다. 지양해야 한다.
“상속세 낮춘다고 갑자기 지배주주가 변하진 않을 것”
“상법 개정 꼭 필요…이사 독립성·전문성 제고 노력 병행해야”
-정부가 현행 20%의 대주주 할증평가 폐지를 추진 중이다. 승계 부담을 덜어줘,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주 이익 침해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대주주 할증평가 폐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상속세율을 낮춘다고 갑자기 지배주주 패밀리가 주주 중심 경영을 하고, 주가를 높이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아부을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높은 상속세라고 주장하는데, 세율 20% 낮춰준다고 절대로 안 변한다.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주주 중심으로 경영할 수 있게 법 제도가 바뀌어서 환경이 이루어진 후에 바터(barter 맞교환)를 하든지, 아니면 환경 조성을 선결하고 나서 상속증여세를 낮추는 쪽이 맞다고 본다.
-법 제도적 환경 조성의 핵심으로 이사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이 꼽힌다. 상법 개정만으로 지배주주 중심 경영의 문제가 일거에 해소되기는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상법 개정의 효과는 어디까지이고, 병행해야 할 조치로는 무엇이 있는가?
=SK(SK이노베이션-SK E&S 합병), 고려아연(자사주 공개매수와 유상증자), 두산(두산로보틱스-두산에너빌리티 합병), 한화(한화에너지의 ㈜한화 공개매수). 올해 여름 이후로 문제가 됐던 기업이다. 다 이사회의 문제다. 지배주주 본인이 챙기거나, 밑에 전문경영인들이 회장님한테 선물 드리려고 노력한다. 그걸 견제할 수 있는 게 이사회인데, 이사회가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실정이다.
회사에 대한 충실 의무만 규정하면, 이사는 회사가 주는 안건을 그냥 찬성하기만 하면 된다. 실제 법률적인 지식이 많은 유명 로펌 변호사 출신, 판사 출신의 이사회 멤버는 이사회에서 거의 얘기를 안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도 회사에 대한 충실 의무는 지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가 없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 고려아연 유상증자 안건 경우 이사 13명 중 이사회에 참석 안 한 2명과 반대한 장형진 영풍 고문 빼고 모두 찬성해서 통과됐다. 이사는 회사가 시키니까 찬성한다고 하겠지만, 주주 이익에는 완전히 반하는 결정이다. 미국 같으면 당연히 통과가 안 된다.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 의무가 판례로 정립돼 있고, OECD의 기업 거버넌스 원칙에도 규정돼 있다.
이사 충실 의무를 확대하는 상법 개정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상법 개정이 이루어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한국 대기업은 용산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교만하다. 최고의 로펌 변호사를 고용해서 이리저리 다 피할 수 있다. 상법 개정과 동시에 이사회 독립성과 주주의 권리를 이해하는 사외이사가 많이 양산돼야 한다. 지금은 너무 부족하다. 법 제도만 개선된다고 갑자기 사외이사들이 모든 안건을 주주 관점에서 살피지는 않을 것이다.
-이사회의 독립성뿐 아니라, 전문성과 관련해서도 지적이 제기된다.
=이사회 멤버는 경영진을 감시만 하는 게 아니다. 식견, 경험, 지식을 바탕으로 미래 전략을 코치하고, 리스크나 부족한 부분을 집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지난 몇 년 동안 행정관료와 법조계 출신을 사외이사로 선임하지 않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신 업계의 외국인 전임 CEO나 고위 중역을 뽑는다. 글로벌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 모범 사례)를 경험한 인사를 모셔 오는 거다. 주요 기업 3분의 1은 외국인 사외이사가 있다. 대만 TSMC는 등기이사 10명 중 6명이 외국인이다.
한국은 현대차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기업에 외국인 사외이사가 없다. 삼성전자는 100% 한국인이다. AI 분야 전문가를 모셔 왔으면 ‘왜 AI 전략이 없냐’, ‘애로 사항이 뭐냐’, ‘누구누구를 기용해라’ 같은 잔소리를 엄청 했을 거다. 삼성이면 경쟁사 현직 CEO를 제외하고는 웬만한 거물급은 다 영입할 수 있다. 현 경영진과 이사회 모두 그런 노력을 안 한 데 대한 책임이 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금투세 도입 우려가 과도한 건 아닌가?
=지금은 한국 주식시장은 5% 수익밖에 안 난다. 이 상황에서 세금을 부과하는 건 가라앉는 배를 물속에 밀어 넣는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금투세에 대한 우려를 이해한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투자 대상 자산에 대해 공평한 세율을 적용하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 한국 자본시장이 정상화돼서 미국까지는 못 가도 일본이나 대만처럼 연 10%의 수익률을 낼 수 있으면, 세금 좀 내도 된다. 금투세가 자본시장의 메인 변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펀더멘털과 별로 상관이 없는 요소다.
원문링크 : [ 민중의 소리 인터뷰 / 조한무 기자 ] 코리아 디스카운트, 검증 안 된 지배주주 패밀리가 문제 -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