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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경제단체의 도 넘는 ‘남소 협박’ (김주영 변호사)

사무국
202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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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영 변호사 /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김주영 변호사 /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이사 충실 의무’를 확대하는 상법개정안이 지난 13일 국회를 통과하자 재계와 일부 언론이 남소에 따른 경영 위축이 우려된다며 일제히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실 이사 충실의무는 1998년 상법개정 때 이사의 책임 강화 차원에서 도입된 것으로서 이사가 경영진과 주주 사이에 이해 상충이 있거나 대주주와 소수 주주 간 이해 상충이 있는 사안을 결정할 때 회사와 전체 주주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영미법상의 ‘Fiduciary duty(신인 의무)’를 명문화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취지가 조문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상법학자 간에도 이러한 충실의무가 선관주의의무와 별개의 의미를 두는 것인지에 관해 견해가 나뉘고 있었고 판례도 엇갈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2000년대 이후 도입된 기업 분할, 포괄적 주식 교환, 소수 주식 강제 매수, 분할합병 등 각종 기업구조 개편 수단들이 소수 주주 축출이나 대주주의 지배권 강화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이해 상충 거래에 있어서 이사의 충실 의무를 더욱 명확히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사의 충실의무가 단순히 이사의 회사에 대한 선관주의의무와는 달리, 이사가 회사 및 전체 주주 이익을 우선시하고, 주주들을 공평히 대우해야 할 의무임을 명확히 하는 이번 상법개정이 추진되었던 것이다.


경제단체에서 이러한 상법개정에 반대하면서 든 논거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법리적인 이유로서 회사와 위임계약을 맺은 이사가 주주에게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우리 회사 법체계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미법상 충실의무가 발생하는 신인 관계(fiduciary relationship)는 당사자 간의 계약에 의해 형성될 수도 있지만 당사자 행위(conduct)에 의해 형성되기도 하며 법에 따라 부과(imposed by law)될 수도 있어, 계약관계를 보충하거나 수정하는 역할을 하므로 위임계약이 회사와 맺어졌다는 사실을 들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부정할 논거는 되지 못한다. 더구나 상법 개정안은 이사가 ‘회사와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이사가 회사에 대하여 부담하는 직무상 의무에 주주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고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해야 할 의무가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독일법이나 일본법의 접근방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므로 우리 회사 법체계나 글로벌 스탠다드와 전혀 어긋나지 않는다.


경제단체의 두 번째 반대 논리는 경제적인 이유로서, 상법 개정이 이사의 법적 책임에 대한 불확실성만 키워 소송 남발, 투자 위축 등 기업 경쟁력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번 상법개정이 투자를 위축시켜 기업 경쟁력을 훼손할지 아니면 자본시장의 발전을 통해 오히려 혁신과 성장을 낳을지는 우리 법률가들이 판단할 부분은 아니고 경제전문가들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경제단체들이 항상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오는 ‘남소 우려’는 근거 없는 ‘협박’에 불과하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기업의 투명성을 증진시키거나,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소송요건을 완화하거나, 입증 책임을 전환하거나, 배상의 범위를 확대하는 입법이 추진될 때마다 주로 대기업의 대주주나 경영진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제단체들은 늘 무분별한 소송으로 경영이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사법정책연구원의 2021년 연구에 따르면 주주대표소송은 도입 30년 만인 1997년에야 최초로 2건 제기되었고, 이후 활성화를 위해 지분율요건 완화와 소 제기 후 지분율요건 면제가 이루어졌지만 1997년부터 2020년까지 24년간 불과 139건만이 제기되었다. 이중 비상장사 주주 간 분쟁 건이 104건이고 상장사 대상 주주대표소송은 불과 35건이니, 진정한 의미의 소수 주주 주주대표소송은 한 해 평균 1.4건에 불과한 셈이다. 또한 2020년 12월에 많은 논란 끝에 도입된 다중대표소송은 아직 한 건도 제기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권시장에서의 불공정거래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도입된 증권집단소송제도는 재계 반대를 무릅쓰고 2004년에 도입되어 2005년부터 시행되었지만 지난 20년간 불과 13건만이 제기되어 연평균 제기 건수가 1건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송이 봇물 터지듯 제기될 것이고 많은 기업이 도산할 것이라는 경제단체의 경고는 그야말로 근거 없는 ‘협박’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경제단체가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입법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근거 없는 남소 주장은 오히려 그 자체로 기업들과 경영인들을 과도하게 위축시켜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을 유념했으면 한다.


/김주영 변호사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원문링크 : [법조시론] 경제단체의 도 넘는 ‘남소 협박’ - 법조신문